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문단 편집) === [[과테말라]] 쿠데타 === 1950년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Jacobo Arbenz Guzman)이 [[과테말라]]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아르벤스는 국방장관을 하던 인물로 1944년 과테말라 민주화 당시 군 내 민주주의 지지자들을 이끌었었다. 1951년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UFC의 [[바나나]] 농장 40만 에이커를 유상 몰수했다. UFC는 세금을 적게 낼려고 실제 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토지를 신고했는데 아르벤스는 그 가격만큼만 배상을 해 회사에 큰 손실을 입혔다. 이 농장의 대부분은 UFC가 경작하지도 않으며 가지고 있던 땅이었다. 땅을 놀리고 있었기 때문에 과테말라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는데, UFC가 이 땅을 경작하지 않고 내버려 둔 이유는 바로 그로 미셸 품종을 초토화시키는 [[파나마병]] 때문에 대처법을 찾기 전까지는 섣불리 경작을 할 수 없던 것.[*출처3 [[http://m.yes24.com/Goods/Detail/4240288|바나나: 세계를 바꾼 과일의 운명]]] 이에 분노한 UFC는 미국 정부에게 적극적인 로비를 벌였다. 마침 미국은 공산당을 합법화시키는 아르벤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먼저 행동에 나선 기관은 [[미합중국 중앙정보국|CIA]]였으며, 이들은 아르벤스 정권 초기부터 정치공작 및 방해공작을 계획했다. CIA는 반 아르벤스 세력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1953년부터는 군부 내 쿠데타 세력을 본격적으로 지원했다. 미 정부는 그러면서도 과테말라 정부에게 UFC의 손실에 대해 15만 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했다. 1954년 6월 18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Carlos Castillo Armas) 대령은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지만 겨우 480명밖에 되지 않은 반군은 대부분 과테말라군에게 진압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테말라군은 반군에게 항복했으며 아르벤스 대통령은 27일 사임한다. 이는 CIA의 심리전에 휘말린 결과였다. CIA가 방송으로 반군의 수를 부풀리고 거짓 전투를 보도해 과테말라군의 전의를 꺾은 것이다.[* 당시 쿠데타 현장에 있었던 사람 중 하나가 의사의 꿈을 꾸며 바이크 여행을 하던 '''[[체 게바라]]'''였다. 이 꼴을 보고 체는 혁명에 투신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카스티요 아르마스는 대통령 자리에 앉아 독재를 펼쳤다. 하지만, 3년만에 경호원의 배신으로 총에 맞아 46살 나이로 [[암살]]당했다. 이후로도 과테말라는 몇십 년간 독재 정권에게 지배받았다. 또한 1960년에 [[과테말라 내전|내전]]이 발발해 1996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동안 적어도 14만명에 달하는 과테말라인들이 살해되거나 실종되었다. UFC는 이후 웃기게도 본국인 미국의 반독점법에 걸려서 중남미의 철도망과 과테말라의 토지 일부를 매각해야만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